‘미국 놈 아닌 아일랜드 놈’ 신부가 제주도에서 일군 기적 [김한수의 오마이갓]
May 17, 2026•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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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출신의 임피제 신부님은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3년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190cm의 거구와 푸른 눈을 가진 그를 보며 주민들이 "미국 놈"이라고 쑥덕거리자, 신부님은 서툰 한국어로 "아일랜드 놈입니다"라며 도민들의 마음을 먼저 열었습니다. 선교비 1,000달러로 시작한 한림성당 건축 과정에서 미국 화물선이 좌초하자, 아일랜드 출신 선장으로부터 사흘 안에 목재를 가져가라는 허락을 받아냈고, 신부님의 헌신에 감동한 주민 100여 명이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며 제주의 위대한 첫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임 신부님은 "영혼의 가난을 벗기 위해서는 물질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포자기해 있던 주민들을 이끄는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경기도에서 암퇘지 한 마리를 기차와 배, 트럭에 실어와 성당 마당에서 키우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성이시돌목장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가축을 분양하고 돌려받는 '가축은행' 시스템을 도입하고 돼지를 홍콩과 일본으로 수출했으며, 1977년에는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0.8%를 이시돌목장 한 곳이 담당하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또한 고향 아일랜드의 뜨개질 기술을 전수해 '한림수직'을 설립하고 1,300여 명의 제주 여성들에게 재택 일자리를 제공하며 자립을 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푸른 제주 중산간의 초원은 버려진 황무지를 일군 임 신부님의 땀방울로 완성되었습니다. 뉴질랜드 전문가를 초빙해 목초지(초록)를 가꾼 신부님의 성공 사례는 박정희 대통령의 주목을 받아 경제동향보고회 발표로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임 신부님은 "비포장도로는 돼지의 살을 빼앗아 가는 도둑"이라며 소신 발언을 쏟아냈고, 이에 감명받은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한림항까지의 아스팔트 도로와 전기, 전화가 일사천리로 개설되었습니다. 신부님의 근성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국가적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신용협동조합, 병원, 유아원을 세운 임 신부님이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인 것은 호스피스 사업이었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마지막은 존엄해야 한다"며 설립한 '성 이시돌 복지의원'은 말기 암 환자들을 무료로 돌보는 안식처가 되었고, 신부님 역시 2018년 자신이 세운 이 복지의원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후임자들은 그를 전지전능한 위인으로 박제하기보다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다 보니 길이 열린 것"이라며, 이제는 개발보다 제주의 생태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묵묵히 제주를 사랑했던 한 수도자의 삶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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