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놉] 리뷰 | 침팬지 장면의 의미는? 이번에도 국내 박스오피스 1위 가능할까? | ASAP 시네마 15편
Aug 19, 2022•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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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Aug 19, 2022
Duration14:19
Video IDhChiIX6Uhqw
Languageko
CategoryFilm & Animation
PrivacyPublic
Made for KidsNo
Video TypeRegular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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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본 영상은 2022년 인문실험 공모전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00:00 프리뷰
1:31 침팬지 장면에 대한 해석
4:28 영화에 대한 영화 '놉'?
10:13 알고보면 코미디 영화?
11:45 스포일러 없는 총평
12:55 이대 '아트하우스 모모' 소개
'놉'의 목표에 대한 추측.
앞서 제가 해석을 하는 것에 별 의욕이 생기지 않는 영화라고 말씀드리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영상 속에서 더 밀고 나가지 않은 해석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이 있을까봐 더보기란에 추가로 적겠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고 누군가는 분명히 꺼낼 얘기라고 봅니다. 저는 끼어들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요.
톰 거닝의 ‘어트랙션 시네마’는 한국에서 ‘매혹의 영화’ 내지는 ‘견인의 영화’라고 번역되곤 했고, 이것이 단순히 ‘놀이기구’나 ‘명소’를 가리키는 ‘어트랙션’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창조적으로 번역(시쳇말로 ‘초월번역’)한 사례라는 지적도 있곤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톰 거닝이 ‘즐거운 신발 가게 점원’을 언급한 단락을 가져와보면,
“포터의 ‘즐거운 신발 가게 점원’(1903)의 클로즈업 컷은, 후대의 컨티뉴이티 기법과도 연관되지만, 무엇보다 그 안의 원천적 동기는 순수한 노출증(exhibitionism)이다. 여성은 치맛단을 걷어 올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발목을 노출시킨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출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주목해봅시다. 토마스 앨새서는 초기 영화들이 “나중에 등장한 고전 영화에서 정성스레 감추고 있는 비밀…즉, (여성의) 육체를 바라보는 (남성) 권력의 시선이 가지고 있는 관음주의적 본성”(토마스 앨새서`말테 하게너, 「눈으로서의 영화-시선과 응시」, 『영화이론』, 161쪽,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을 아무런 우회도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노출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음증적 전통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그가 꼽고 있는 영화가 바로 ‘즐거운 신발 가게 점원’이죠.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노출증과 관음증이 초기영화, 즉 ‘어트랙션 시네마’의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는 것은, 현대 광고업계에서 종종 언급되는 3B 법칙(Baby(아기), Beauty(미녀), Beast(동물)이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가 눈길을 끈다는)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본질은 바뀌지 않은 셈이죠.
영화의 본질이 이런 식이었고, 고전영화든 현대영화든 그것을 정성스레 감추는지 아니면 대놓고 드러내는지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종종 여성주의에 기반해서 영화를 보려는 관객을 실의에 빠트리곤 합니다.
‘놉’은 이러한 낙담을 겪은 사람의 치유극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가부장제가 아닌 인종주의 때문에 겪게 된 낙담이지만요. 이를테면 ‘서부극을 흑인이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를 다루는 영화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죠. 로저 이버트는 ‘위대한 영화’ 2권 서문에서 인종주의적 영화인 ‘국가의 탄생’을 다루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타란티노는 흑인 영웅이 나오는 서부극 ‘장고’를 통해 한바탕 살풀이를 벌이기도 했죠. 그렇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국가의 탄생’을 영화사에서 빼지는 못한다는 것, 또 서부극을 안 찍지는 못한다는 것이 그래도 양심 있는 백인의 딜레마였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면의 딜레마는 어떤 방식으로건 돌출되기 마련이죠.
‘놉’은 흑인으로서 조던 필이 영화사와 마주쳤을 때 겪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영화는 카메라를 총처럼 들고(심지어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는다=총으로 상대를 맞춘다’는 도식이라도 있는 것인지, 이들은 괴물이 멀쩡한 상태인데도 단지 카메라로 찍는 것에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끝났어!”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심지어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에 굳이 말을 타고 자연재해와 같은 괴물과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멋진 목소리를 가진 시한부 촬영감독은 서부영화에 흔히 나오는 퇴역한 베테랑 캐릭터 같죠. 무엇보다 대놓고 카우보이 테마파크가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선언문처럼 느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살아남아 서부극 영웅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카우보이 테마파크 앞에 나타납니다. 저는 이것이 ‘혹성탈출’의 말을 탄 침팬지 이미지 이후 대중영화가 주류 영화계에 가하는 가장 전복적인 ‘기수’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혹성탈출’에 대해서는 부산일보에 실린 제 글 ‘0과 1이 된 링컨과 릴리언 기쉬를 확인해주시길) 메이브리지의 흑인기수로 시작해 다시 흑인기수로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는 영화사에 대한 흑인으로서의 재해석이나 마찬가지죠.
저는 메이브리지의 사진 속 인물이 흑인 기수라는 점을 힘주어 말하는, ‘놉’의 영화사에 대한 전복적 재구성이 마치 서부극을 좋아하는 흑인 영화인으로서 느끼는 어정쩡함의 표현이자,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영화사에 다시 접합하려는, 다시 영화를 사랑하려는 노력이라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서부극을 조던 필 감독이 좋아하는지와 무관하게, 이는 서부극이 가진 상징성을 ‘탈취’하려는 시도인 것이죠.
이는 마치 H.D.를 비롯한 『클로즈업』의 여성 필진들을 초기 영화사의 선구적인 여성주의 비평가로 자리매김 하는 시도, 아니면 최초의 극영화를 만든 알리스 기에 주목하는 여성주의적 영화사 전복 과정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참고 논문: https://repository.hanyang.ac.kr/bitstream/20.500.11754/114306/1/%EC%95%8C%EB%A6%AC%EC%8A%A4%20%EA%B8%B0(Alice%20Guy)%EC%9D%98%20%E2%80%98%EA%B8%B0%EC%88%A0%EC%A0%81%20%EC%9E%91%EA%B0%80%EC%84%B1%E2%80%99%20%EA%B3%A0%EB%AA%BD(Gaumont)%20%EC%8B%9C%EA%B8%B0%20%EC%9E%91%ED%92%88%EB%93%A4%EC%9D%98%20%EC%8B%9C%EA%B0%81%EC%A0%81%20%EC%8A%A4%ED%83%80%EC%9D%BC%EA%B3%BC%EC%82%AC%EC%9A%B4%EB%93%9C%20%EC%8B%A4%ED%97%98%EC%9D%84%20%EC%A4%91%EC%8B%AC%EC%9C%BC%EB%A1%9C.pdf 참고 영화: ‘자연스럽게: 알리스 기-블라쉐의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
위와 같은 시도가 의미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영상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작품이 일반적인 공포영화를 기대하고 찾은 대중에게 일반적인 재미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고 싶습니다.
#놉 #nope #조던필